2013년 4월 즈음 몇 년 만에 하던 일을 다시 하게 되어 의욕이 앞서서인지 내 몸이 괴롭다는 사실도 잊고서 근무하는 중 회사 실장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동생도 힘들었다 하면서 갱년기가 빨리 찾아 왔다고 여기는지 호르몬 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재입사한지 얼마 안돼 병원 들락거리는 것이 민폐같아 차일 피일 미루다가 두려워 하는 나를 위해 동료가 산부인과 예약해주고 진료실까지 동행해준다 했으나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 혼자 접수했다. 내 병을 나도 모르니 동료들은 '자궁근종'일 것이라고 예측하며 보험든 것 있냐? 지금이라도 실비들라고 했다. 20년 전 삼성생명 보험 든 것은 있는데 그 때라도 실비를 들어둘 것을 암인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원래는 초음파 검사와 조직 검사를 하면 1주일 걸린다고 했으나 바로 그날 산부인과에서 자궁경부암으로 예상된다면서 상급병원으로 전원하라고 소견서를 써주었다.암이라는 것을 안 순간 모든 의문이 풀렸다고 할까? 그래서 그렇게 작년 여름부터 올겨울 몸이 축나고 피곤했던 것이구나. 암인 줄 몰랐을 때는 그냥 저냥 내 몸을 끌고 다니면서 아픈 척도 하고 안아픈 척도 하며 내가 나를 속였으나 더 이상 내가 환자라는 것을 속일 수 없었다. 내 속을 달래기 위해 분위기있는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와 샐러드를 먹으면서 주변에 있는 손님과 식당 종사자들을 바라보았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내 몸이 정상이 아닌 것은 매 한가진데 암인지 아는 순간 왠지 그들과 내 사이에 장벽이 놓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머리카락이 그래서 자주 빠졌었나?' '머리밀고 가발쓰고 다니고 모자도 사야 하나?' 유방암과 달리 자궁경부암은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아 괜한 기우에 불과했지만 암이란 것을 아는 순간 내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든 것은 가발,모자,기도원 이런 것들이었다.내일은 일요일이니 어릴 때 교회 친구에게 전화해서 "나 암이니 교회가서 기도해야겠어"라고 하며 교회로 안내하라고 했다. 친구는 교회가자는 말은 하지 않고 암환자에게 좋은 건강식품을 소개할테니 그 쪽으로 전문가이신 선생님을 같이 만나자고 한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처럼 다음날 약속했지만 평소와 달리 기운이 없어 삼각지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문자로 약속을 취소했다. 그 선생님이 나를 위해 멀리서 올라 왔는데 갑자기 취소하면 어쩌냐고 만나자는 메세지와 전화가 계속 걸려 오며 며칠 뒤 우리 회사 앞으로 찾아 온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그 친구말고도 뉴스킨 가입하라고 해서 멀티비타민과 오메가3를 권유해서 구입하기도 했다. 둘 다 연락도 끊고 지금은 만나기 싫다. 나중에 병원에 입원하고 환자들이 하는 말이 암진단받고 여기 저기에서 약장사가 달라 붙으니 조심하라고 하더라. 암환자는 완치되기 전까지는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약 외에는 금지시키는 편인데 백인백색이라 건강식품도 사먹고 대체 요법도 몰래 몰래 하지만 내 경우,큰 일을 치루고 나서는 왠간하면 병원 주치의나 간호사가 시키는대로 하게 된다. 심지어 암환자가 되면 약해진 마음에 위로와 연민을 주다가 돈도 빌려 달라고 하니 그런 친구나 지인이 있다면 조심하라고 하더라. "돈을 왜 빌려달라고 해?" "암환자 돈은 안갚아도 되거든" 씁쓸하지만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환자가 되니 진실한 친구가 누군지 구분이 된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친구도 있었고 나라는 인간과는 별개로 암환자이기 때문에 환자에 대한 관심과 연민을 갖고 다가오는 친구도 있었다.그다지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기에 생일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는 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옆 환자 보호자가 찾아올 때 '보호자나 친구를 돈주고 사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결혼식 하객 대행하는 곳이 있듯이 환자 보호자 대행도 있어야 한다.^^ https://www.silvercloud.pe.kr/product/clssic2 암환자는 항암치료때문인지 건망증이 붙어 버려 핸드폰,접수 카드,백,사물함 키 등 자주 분실하곤 한다. 환자들이 입맛없을 때 선호하는 누릉지를 만들다가 몇 번이나 태워 버려서 병원 내 가득 탄 내가 나곤 했는데 어떤 환자도 다들 정신머리 없어서 인지를 잘 못한다. 유방암 환자와 달리 어깨까지 길었던 자랑스러운 머리를 간수하고 싶었지만 항암 치료가 거듭 되면 세수도 귀찮아져 결국 커트를 하고 말았다. 아산병원에 치료하러 가는 길에 일본에 있는 언니에게 전화가 걸려와서 '너 핸드폰 미용실에 두고 왔지?'하는데 그제서야 핸드폰 분실한 것을 알게 되었다. 핸드폰이 두 개이니 망정이지....우리 집보다 편했던 암환자 케어 병원에 도착하니 간호사 샘이 '친구에게 전화가 왔는데 미용실에 핸드폰을 두고 갔다 하니 찾아 가래요'한다. 언니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또 다른 친구가 전화했다가 미용실에 핸드폰 분실한 것을 알게 되어 송파 병원 안내실에 연락했던 모양이다.병원 부장님이 "아무개씨는 친구가 참 많나봐요." "네 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암치료하다 보면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연약해져 찾아오고 보호해주는 친구나 지인,보호자가 그렇게 반갑고 은연중에 옆에 환자들의 보호자들과 내 보호자들을 비교하면서 없던 기운도 발딱발딱 살아난다. 그 때 커트해버린 머리가 지금은 커트도 아닌 것이 단발도 아니며 폼새가 말이 아니지만 민머리 환자들에 비해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지 다른 암이 아닌 자궁경부암이었던 것에 감사드린다.